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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동정, 동문탐방

고광석(59회화)

[월간 제50호] 2024년 4월

고광석(59회화) 


지난 3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에서 열린 서울대학교총동창회 정기총회 및 관악대상 시상식에서 고광석 동문이 2024년 관악대상을 수상했다. 본지는 관악대상수여식 현장을 방문하여 고동문을 만났다.



고광석 동문은 이날 휠체어를 타고 관악대상을 수상했다. 시상자로 나선 김종섭 총동창회장과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관악대상수여식 개최 이래 최초로 단상에서 내려와서 상장과 상패를 수여했다.(▲사진) 




관악대상수여식에는 고동문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선후배 및 동기들도 참석했다. 본회 손문 자 고문, 정옥란 고문, 김선희 이사, 김소선 감사, 이애자 이사, 이민주 상임부회장은 고동문의 부인인 장민자여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며 축하의 뜻을 전했다.(◀사진)


고동문은 재학시절 작품제작은 물론 학회활동도 열심히 했다고 고동문과 입학동기였던 장상의 동문(59회화)은 회상한다. 장동문은 당시 동기들이 함께 창경궁으로 스케치여행을 갔던 추억도 이야기해 주었다. 미대입학 후 2년간 서양화를 전공한 후 3, 4학년 때는 동양화를 공부하였으므로 이종상 교수, 김인중 신부, 조정송 교수와 가깝게 지내며 장우성, 서세옥, 박세원 교수께 다양한 동양화를 수학하였다. 정옥란(62응미) 동문은 입학당시 고동문이 같은 광주 출신이라고 자신에게 데셍도 지도하면서 친절히 대해준 선배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또한 미대 4학년 시절 합창단을 조직해 이화여대 총학생회와 연계해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동문은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갖고 국문과를 비롯한 타 학과의 수업도 청강을 하면서 미대생 이외의 동문들과도 교류 했다. 사회가 혼란스럽던 그 당시부터 자유, 정의, 민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김치호(수학과), 변승지(지리학과), 조응래(사학과), 문리대생인 권혁달 동문 그리고 고려대학 등 타 대학 친구들과 7명이 송우회(솔벗 모임)라는 모임을 만들어 연구와 토론을 해왔으며 당시 4.19의거에 가담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부로부터 배운 천자문을 4세 때 다 떼었던 고동문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당시 광주에서 금산까지 가서 일제와 투쟁하다가 순직했던 제봉 고경명 의병대장의 14대손으로 늘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살아왔다고 한다. 평생을 절약하며 어려운 사람을 돕고 애국하며 살아온 고동문은 40여 년 살던 자택을 처분하여 마련한 기금으로, 서울대총동창회에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인 20억원을 미래지향적인 지도자 양성을 위해 장학금으로 쾌척하였다. 

“어머니가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어요. 집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구멍가게를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한 아주머니에게 무상으로 주기도 하셨어요. 거지가 집 앞을 지나가면 집으로 들어오게 해서 상을 차려주곤 하셨죠.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 베풀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본받을 게 많은 분이셨습니다.”

어머니를 본받아 고동문은 ‘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에 10억원, ‘대전 가르멜(봉쇄)수녀원’에 5억원을 기부하는 등 우리 사회의 나눔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근검절약을 생활화하면서 매달 받는 국민연금을 모아 1억원을 고아원에 기부하기도 했다.


고동문은 미대를 졸업한 후에도 15대1의 경쟁을 뚫고 64년 법대에 편입하여 법을 공부하였고, 이후 한일은행에서 근무하며 법률 세무 상담사례집을 출간하여 뉴욕 싱가포르 등에 3개월간 연수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사례집은 일제시대 대출 문화의 문제점을 당시 현실에 맞춰 고친 것이었으므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된다.


대치동에 사놓았던 땅 위에 연 13.5%의 상호신용금고대출을 받아 아람빌딩을 건축하였고. 임차인을 사원으로 변경하여 80%의 임대료만 받고 운영해오고 있다고 한다. 부인인 장민자 여사는 평소 화훼예술가를 꿈꾸고 실천해 온 낭만주의자로 이러한 고동문의 기부정신을 마땅히 해야 할 사명으로 여기고 한편 자랑스러워하면서 계속 뒷받침해 온 분이다. 


고동문은 은행에 재직하면서도 꾸준히 문인화를 그려왔으며 강남미협 등에 속하여 전시회도 해 왔다. 부인인 장민자 여사는 “이 양반이 음악도 하고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는데, 제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글 짓는 재주”라고 덧붙였다. 이력을 보니 2002년 강남서예문인화대전 초대 작가 선임, 2008년 대한민국 문인화대전 초대 작가 선임 외 여러 잡지에 다양한 글을 게재한 흔적이 뚜렷하다. 2015년에는 ‘세계 시 · 수필 · 명언집’도 편찬했다. 고동문은 앞으로 이십 여 점의 작품을 새로 제작하여 개인전을 가질 새로운 꿈을 꾸고 있으며 이 계획이 멋지게 실천될 날을 기대한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오상(五常)을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늘 인격을 도야하고, 미래지향적인 뜻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삶이 녹록치 않다 보니 자기 자신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큰 것 같은데, 이해는 합니다만, 좀 더 큰 뜻을 마음에 품고 살았으면 합니다. 산 너머 저쪽엔 파랑새가 없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젊은이들이 힘차게 뛰어줬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고동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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